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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약사

서양사학과의 전신인 사학과는 1946년 서울대학교의 탄생과 함께 창설되었으며 문리과대학 소속이었다. 1969년에는 사학과가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로 분리되었고,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인문대학으로 배속되었다.

 

문리과대학 시기

우리 서양사학계의 제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조의설(1906-78), 김성식(1908-86), 김성근(1909- ) 등이 모두 1930년대에 일본의 대학을 졸업하여 국내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이는 적지 않은 동시대의 철학 연구자들이 유럽이나 미국의 대학에 유학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아울러 제2세대를 대표하는 민석홍, 길현모, 이보형, 노명식, 안정모 등은 모두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하여 문리과대학 사학과로 편입하였다. 1946년에 서울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을 때, 사학과는 문리과대학에 개설되었다. 출범 당시 서양사 전임교수는 없었지만, 경성제국대학의 장서를 바탕으로 서양사합동연구실을 꾸려 교육과 연구의 기본 틀을 갖추었고, 강사로서 출강하여 처음으로 서양사 강의를 하였던 조의설(당시 연희대교수, 서양고대사 전공)과 1948년에 서울 사범대에 전임으로 부임하였던 김성근(서양근대사)이 전임 못지않은 열의로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유급조교였던 김재룡(독일사)이 1949년에 전임강사로 승진하여 최초의 전임교수가 되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사망했고, 그 후임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의설 교수를 비롯하여 민석홍(서양근대사, 프랑스사), 길현모(서양근대사, 영국사), 이보형(미국사), 안정모(서양중세사) 등의 젊은 시간강사들이 강의를 담당하였다.

1954년에는 민석홍이 문리대가 전임 부재의 타개책으로 신설한 대우강사직을 맡았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 비로소 사학과에 서양사 전임 자리가 생겨났다. 1961년에 민석홍 교수가 새로이 임명되고, 1966년에 양병우 교수(서양고대사)가 전남대로부터 부임하였다. 1968년에 서울대에 교양과정부가 신설되자 역시 전남대로부터 나종일 교수(1968년, 영국사)와 서울사범대 출신의 오인석 교수(1970년, 독일사)가 부임하였다. 당시 사범대학에는 따로 김성근 교수와 이민호 교수(1966년, 독일사)가 재직하고 있다가 김성근 교수는 1974년에 정년퇴직하였고, 해방 직후부터 줄곧 강의를 맡아온 조의설 교수 역시 은퇴하여 더 이상 출강하지 않게 되었다.

1969년에 문리대 사학과가 분리되었을 때, 서양사학과의 전임교수 두 분을 포함하여 서울대에 모두 다섯 분의 전임교수가 있어 이들이 사실상 본과의 교수진을 구성하였고, 그 외의 전공과목에 대해서는 이보형, 노명식(서양현대사) 교수 등이 출강을 하였다. 문리대 시절에 대학원에 서양사전공과정이 이미 40년대 말에 설치되었지만 그것이 특히 석사과정의 수준에서 실질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1960년대에 들어서이다. 1950년에 대학원 서양사학 전공에 4명이 입학을 하고 이후에도 여러 명의 입학생이 있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이 가운데 정식으로 학위논문을 제출하여 본과에서 최초로 1959년에 석사학위를 받은 이는 차하순 교수이다. 이후 1960년대에만 모두 15명이 석사가 되었고, 70-74년에는 3명의 석사가 더 배출되었다. 반면에 이 시기에 박사과정은 아예 부재했으며, 다만 그것을 개설하기 위한 준비로서 1970년대 전반기에 4명의 본과 교수가 이른바 ‘구제(舊制)’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렇듯 문리대 시절은 교수충원, 교과운용, 연구자 배출, 전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서양사학을 분과학문의 하나로 자리매김해가는 준비기였으며, 이후 발전의 불가결한 발판이 되었다.

 

인문대학 시기

1975년에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종합화됨에 따라 단과대학의 개편이 진행되어 문리대가 사라지고 인문대학이 그 후신의 하나로 신설되면서 교수들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문리대 서양사학과의 민석홍, 양병우, 사범대 역사교육과의 이민호, 교양과정부의 나종일, 오인석 등 서울대의 서양사 관계 교수들이 모두 인문대 서양사학과로 모였다. 그리고 얼마 후인 1979년에 이인호 교수(러시아사)가 고려대에서 부임해왔다. 그 결과 본과는 서양중세사 및 미국사 분야에서 공백이 있기는 했지만 학부과정에서 시대사나 지역사를 체계적으로 교수하고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전공별로 지도할 수 있는 교수진용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본과 전임교원의 수가 1980년대 초에 7명으로 늘어났고, 학부의 입학정원은 1969년 이후 10명을 유지하다가 1981-84년에 ‘졸업정원제’의 도입과 함께 30명을 훌쩍 넘어섰다가 1985년 이후 20명선을 유지하였다. 가장 두드러진 결과는 대학원과정의 양적 증대와 질적 향상으로 나타났다. 본과는 1975년 이후 2005년 2월까지 모두 131명의 석사와 42명의 박사를 배출하였고, 본과 학부졸업생으로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는 같은 기간에 25명에 이르고 있다. 사실 이 수치는 한국에서의 서양사학의 발전에서 본과가 견인차의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인문대 시절에 일어난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학과교수진용의 세대교체이다. 1983년에 과의 교수정원이 7명이 되면서 새로이 늘어난 자리에 서양사학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최갑수 교수(프랑스사)가 전임발령을 받았다. 1989년에는 양병우 교수가 정년퇴임을 하고, 그 후임으로 각국사 분야에서 빠져 있었던 미국사를 전공한 배영수 교수가 취임하였다. 1990년에 민석홍 교수가 정년퇴임하고 1992년에는 나종일 교수와 이민호 교수가 잇따라 퇴임함에 따라 학과에도 세대교체의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어왔다. 그 후임으로 인하대에서 박지향 교수(영국사)와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주경철 교수(서양경제사)가 1992년에 부임했고, 이듬해에는 안병직 교수(독일사)가 취임하였다. 이로써 본과에서 해방 1세대가 모두 현역에서 은퇴하고 전원 그 제자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이후 이인호 교수가 대사직을 맡기 위하여 1996년에 퇴직하고 그 후임으로 한정숙 교수(러시아사)가 부임하였고, 오인석 교수가 2002년에 정년퇴임하고 그 후임으로 서양중세사를 전공한 박흥식 교수가 2003년에 부임하였다. 이렇게 하여 세대교체가 마무리 되었고 새로운 발전을 위한 기틀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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